그가 코트를 떠났다.
‘돌고래 점프’라 불리던 탄력 넘치는 후위 공격,
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,
그리고 누구보다 철저했던 자기관리까지.
한국 남자배구의 살아있는 전설,
**故 장윤창 교수(향년 65세)**가
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.
“그 시절, 그는 배구 그 자체였다.”
1978년, 로마 세계선수권 4강 신화.
고작 인창고 2학년이던 소년은
강만수, 김호철, 이인 등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
대한민국을 세계 4강으로 끌어올렸습니다.
그 소년이 바로 장윤창이었습니다.
🏅 이후
- 197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
-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
-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
한 시대를 풍미한 아포짓 스파이커,
그리고 스카이 서브의 선구자였죠.
“몸은 코트 위에, 마음은 늘 배구에”
장윤창이라는 이름은
그저 ‘잘했던 선수’로 기억되기엔 부족합니다.
- 술? No.
- 담배? Never.
- 몸관리? 끝판왕.
40대까지 코트를 누빈 장수 선수,
그의 비결은 철저한 생활이었습니다.
고려증권 소속 시절,
상대적으로 약한 팀 전력에도 불구하고
무려 대통령배 6회 우승을 이끌며
배구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.
“후배들이여, 배구는 곧 인생이다.”
은퇴 후에도 장윤창은 코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.
- 대한배구협회 경기감독관
- 기술이사
-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
배구인으로서의 삶을 끝까지 이어가며
수많은 제자들에게
“기록보다 자세가, 승리보다 태도가 중요하다”는
배구인의 철학을 몸소 보여줬습니다.
“그의 마지막 점프는, 별이 되어 올랐다.”
그런 그가,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.
위암과의 힘겨운 싸움,
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.
“조금만 더 좋아지면, 현장에 복귀하고 싶다”
-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
배구 해설위원 김세진은
“나의 길잡이 같은 존재였다”며
그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했고,
신영철 OK저축은행 감독은
“한국 배구의 큰 별이 졌다”며
고개를 숙였습니다.
장윤창, 그리고 그를 닮은 아들
그의 아들 장민국은
아버지의 운동 DNA를 이어
농구선수로 성장했습니다.
최근 창원 LG 세이커스에서
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
‘부전자전’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죠.
마치며 : “배구는, 그에게 인생이자 영혼이었다.”
그의 별명 ‘돌고래’처럼,
장윤창은 누구보다 높이,
누구보다 멀리 도약했던
진정한 배구 레전드였습니다.
🕯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.
장윤창 교수님, 그 찬란했던 스파이크와
끝없는 점프,
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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